[시가있는아침] '동지'

 

눈을 감아도 환한 저 길 끝아랫목에서 굽은 허리를 지지실 어머니 뒤척일 때마다

풀풀, 시름이 날릴 테지만 어둑해질 무렵이면 그림자처럼 일어나 홀로

팥죽을 끓이실 게다.

 

숭얼숭얼 죽 끓는 소리 긴 겨울밤들을 건너가는 주문이리라.

너무 낮고 아득해서 내 얇은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눈그늘처럼 흐릿해서 들여다볼 수 없다.

 

 

오늘 12월 22일은 동지다.

이 날은 일년 중 낮이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낮은 태양으로 양(陽)을, 밤은 달로 음(陰)으로 인식한 음양관에 의해

동지는 음(陰)이 극에 도달한 날이지만 이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다시 말하면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아세(亞歲) 즉 작은 설날로 생각한 것이다.

이날에는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는 기록이 민간에 회자되고 있다.

 

조선시대 민속을 정리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동짓날을 아세 (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사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동짓날 시절음식인 팥죽이 축귀(逐鬼)와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천연두)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널리 애용되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가져다 놓고 삼신과 성주신께 빌기도 하고,

부정한 액을 소멸시키고자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리기도 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팥이나 팥죽과 관련이 있는 이런 행위들은 현대에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새로 집을 장만하거나, 이사를 갈 때면 집안 여기저기에 팥을 뿌리거나,

팥죽을 쑤어서 뿌리기도 하고, 상점을 오픈 했을 때나 차를 구입했을 때도

액을 소멸하는 의미로 팥을 뿌린다.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팥에 부여된 주술적 의미 때문이다.

 

부적에서도 알 수 있듯 붉은 색은 귀신을 쫓아내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의 여름 상품 중에 팥빙수가 있다.

이것은 팥에 대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관념을 계승하고 수용하여

상품화한 대표적인 한국 여름나기 상품이다.

축귀의 기능을 갖고 있는 팥으로

더위 귀신을 물리치는 우리만의 여름 먹거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동지를 셋으로 나누는 풍습이 있다.

동지가 동짓달 상순에 들면 애동지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했는데,

 

애동지가 들면 그 해는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가 들면 노인들에게 좋다는 풍습이 있어

애동지 때에는 굳이 팥죽을 쑤지 않았다.

 

올해는 동지가 11월 3일 이기에 애동지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팥이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이 날에는 팥죽 대신에 팥시루떡으로 액을 물리쳤던 것이다.

 

 동짓날의 팥죽에는 새알심이라고 하는 단자를 넣는다.

이를 지방에 따라서는 옹심이, 오그랭이, 옹시래미라고도 부르는데,

이 새알심은 팥죽의 핵심이다.

 

새알심을 통해 우리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난생설화의 전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신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신화,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

신라의 석탈해 등 낯익은 이야기들이 모두 알(卵)과 관련이 있다.

 

새의 알이든 곡식의 알(알곡식)이든, 남성 성기의 알이든, 닭의 알이든

알은 생명탄생의 전(前)과정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영(靈)이 있다는 만물유령관이 지배하고 있었던 고대인들에게

곡식의 알과 새와 동물의 알은 신비의 대상이었고, 다산과 재생의 상징이었다.

 

굳이 신화에서 알을 통해 태어나는 신이한 출생과정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짓날 자기 나이 숫자대로 새알심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짓날의 새알심은 신화시대의 인식이 동지의 풍속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단서이다.

이 새알심은 죽음에서 소생하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고,

천신의 대리자인 새의 알이기도 하며,

다산을 상징하는 닭의 알일 수도 있고,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곡식의 알이기도 하다.

 

알은 새로운 생명과 탄생의 출발을 가능하게 하며,

다산과 풍요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짓날 팥죽을 먹음으로써 해가 죽음에서 소생하듯이

지난 해 일어났던 좋지 못한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년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해라니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겠는가.

동짓날 팥떡을 만들어 새 희망을 가져보자. 

 

 

 

'● Transf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밀한 데이트 코스...영종도`  (0) 2007.01.26
태그  (0) 2007.01.22
결혼 제대로 하려면 콩깍지부터 벗어라  (0) 2006.12.08
해성 보육원  (0) 2006.09.04
히힛~~~  (0) 2006.0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