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면 '아이핀(i-PIN)'이란 용어가 자주 눈에 띈다.

신문기사나 방송 뉴스에도 '아이핀 제도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핀이란 '인터넷 개인 식별번호(Internet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의 영어 약자이다.

이는 2005년 방송통신위원회(옛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해 인터넷상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든 것으로 2006년 10월부터는 아이핀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면 왜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아이핀을 만들었을까.



개인정보 유출 사건들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오픈마켓 옥션이 해킹을 당해 1081만여 회원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유출됐고 하나로텔레콤은 수백 개 텔레마케팅 회사에

가입자 정보를 넘겨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다음 등 유명 인터넷 사이트가 해킹을 당했고,

LG텔레콤의 가입자 정보가 며칠씩 인터넷에 공개되는 사태도 있었다.

이럴 때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주민등록번호의 노출이다. 이는 그 자체가 개인정보이므로 번호만으로 성별과 나이·생일을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만능 열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번호만 알면 그 사람의 병원 진료 경험이나 물건 구입 이력 등을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각종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

많은 이가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주민번호를 이리저리 조합해 아이디(ID)나 비밀번호로 활용하는 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주민번호는 각종 불법 취득 정보 가운데서도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그만큼 쓸모가 많기 때문인 것이다.



정부는 이처럼 중요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고 악용되는 사건이 계속되자 인터넷상에서 개인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아이핀인 것이다.

아이핀은 주민번호처럼 13자리 숫자로 돼 있지만 주민번호와 달리 숫자만으로는 성별·생년월일 등을 알 수 없다.

사용자가 언제든 번호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장점. 방통위는 최근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르자 '포털 등에 가입할 땐

주민번호가 아니라 아이핀을 쓰도록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전에도 정부는 아이핀 보급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가입 절차가 번거롭고 인터넷 업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자상거래나 온라인 금융거래 때는 반드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보관토록 한 '전자상거래 및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또한 걸림돌이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성동진 차장은 "아이핀 보급이 활성화하려면 전자상거래법이나 정보통신망법뿐 아니라 인터넷실명제 등 관련 법과 규정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업은 물론 관공서·개별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요구하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3100만 회원이 있는 국내 최대 검색포털 네이버에 가입하려면 이름과 주민번호, e-메일 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려 해도 이름·주민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을 입력하고 회원 가입부터 해야 한다. 물건을 고른 뒤

신용카드 번호를 넣는 건 기본. 일반 기업의 고객 사이트조차 회원 가입 없이는 제품에 관한 질문을 올리거나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이는 주민번호를 알면 본인 확인을 하기 편하고, 고객 관리와 정보 수집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진보네트워크의 장여경씨는 "해외에선 인터넷 쇼핑몰조차 회원 가입 없이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거래할 수 있다"며 "아이핀도

주민등록번호처럼 해킹당하거나 악용될 소지가 큰 만큼 개인정보를 마구 수집하는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핀은 공인 인증기관에서 발급해 준다. 이런 기관으론 ▶서울신용평가정보(www.siren24.com) ▶한국전자인증(www.greenbutton.co.kr)

▶한국신용정보(www.idcheck.co.kr) ▶한국신용평가정보(www.vno.co.kr)▶한국정보인증(www.signgate.com)이 있다.

이들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본인임을 입증하면 아이핀을 발급받을 수 있다. 본인 입증을 하려면

온라인 공인인증서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신용카드 정보 등을 입력해야 한다. 아이핀을 발급받은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는

공인 기관들의 컴퓨터에 보관된다. 그리고 주민번호와 같은 13자리 숫자의 아이핀을 이용자에게 만들어 준다.

미성년자들은 보호자의 신원확인을 통해 아이핀을 발급받을 수 있다. 성인이지만 본인확인 수단이 없을 때는 직접 공인기관에

가서 신청해야만 한다.

아이핀도 네티즌의 고유한 신분번호이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될 경우엔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보 유출이 의심스러우면

인증기관에서 기존의 것을 없애고, 다른 아이핀을 재발급받을 수 있다는 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것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런 아이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관하는 것이지만 이와 별도로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쓸 수 있는

'지핀(G-PIN)'을 만들어 보급할 예정에 있다. 행안부는 2010년까지 공공기관들이 지핀을 도입하도록 올 1월 인증센터와

시스템 개발을 마무리했다.

행안부는 앞으로 지핀과 아이핀을 상호 연동할 계획임을 밝혔다. 지핀을 민간 웹사이트에서도 쓸 수 있게 한다는 복안이다.

물론 아이핀으로 공공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면서. 그러나 현재는 서로 연결이 안 돼 당분간 아이핀과 지핀을

따로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전망이다.

글 : 이나리 기자 김창우 기자

출처 : [조인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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